축) 영동선의 긴 봄날/ 김민정 시집 하)
*. 시인의 말/'서정 속의 서사, 영동선'에서--------
'영동선의 긴 봄날'은 영동선 철로변에서 오래 사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정성이 짙은, '서정서사시조'로 표현해 보려고 시작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생겨 지금껏 긴 역사를 누려온 영동선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셔서 영동선과 함께 사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사(1912~1968)를 함께 다루어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6.25 전쟁, 4, 19 혁명 등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 민적의 역사를 표출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역사의 전부이거나 역사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는 아주 작은 파편일지라도 평범한 한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반추되었는지를!
아버지는 57세의 짧은 인생을 사시면서 시골 우체부, 선로반 직원, 건널목지기 등의 직업을 가지셨고, 한때는 일제의 권유이민으로 만주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오신 분이다. 이민을 갈 때는 자유로웠지만 한 번 가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여건이 좋지 못했던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를 철저히 하는 바람에 고국에 다시 돌아오기는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환언하면, 이 시집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삶과 영동선 철로의 역사를 이야기 시조로 풀어내어 이른바 서정과 서사를 아우른 서정서사시조를 써 보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 김민정 시인의 약력과 작품
철로변 인생/ 영동선의 긴 봄날1
무심히 피었다 지는
풀꽃보다 더 무심히
모두가 떠나 버린
영동선 철로변에
당신은
당신의 무덤
홀로 지켜 왔습니다
살아서 못 떠나던
철로변의 인생이라
죽어서도 지키시는
당신의 자리인걸
진달래
그걸 알아서
서럽도록 핀답니다
시대가 변하고
강산도 변했지요
그러나 여전히
당신의 무덤가엔
봄이면
제비꽃, 할미꽃이
활짝활짝 핍니다
세월이 좀 더 가면
당신이 계신 자리
우리들의 자리도
그 자리가 아닐까요
열차가
사람만 바꿔 태워
같은 길을 달리듯이
영동선에 잠들다/ 영동선의 긴 봄날77
긴 겨울 물소리가
깨어나고 있을 무렵
아버진 가랑가랑
삶을 앓아 누우시며
고단한
삶의 종착역
다가가고 있었다.
봄날도 한창이던
사월도 중순 무렵
간이역 불빛 같던
희미한 한 생애가
영동선
긴 철로 위에
기적(汽笛)으로 누우셨다.
*.작품 해설/ 서정과 서사의 결속을 통해 부르는 사부곡(思父曲)/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김민정 시인의 신작시집 '영동선의 긴 봄날'은 서정과 서사의 충실한 결속을 통해 부르는 일종의 사부곡(思父曲) 이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심포리에서 태어난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가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어 그곳에 누위 계신 아버지에 대한 각별한 기억의 서사를 펼쳐 보여준다.
이번 시집이 비록 서사를 뼈대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시인의 기억과 회상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서정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 점에서 김민정의 이번 시집은 서정과 서사의 결속을 통한 절절한 노래라 할 것이다.
대개 한 편의 서정시에는 시인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깨달음은 물론 시적 대상을 향한 시인의 한없는 그리움이 압축되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시인의 각별한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번 시집을 통해 김민정 시편들이 '아버지'라는 시적 대상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진 채 써졌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기원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는 강한 열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김민정 시인께/ ilman
아름다운 그 모습에
고운 마음씨 더하여
남정네 가슴에다
설레임을 심더니만
효심(孝心)을
시화(詩化)하시니
그 아버지 또한 부럽군요